구정

2023. 5. 1. 00:00당신의 주파수

당신의 주파수 20230506

 

이예진

 

 

기억해 닭 잡는 소리

언젠가 따라하게 될 지도 몰라

 

오빠들은 말이 짧고 손이 더럽다

사촌들이 나를 옷장에 가두고 세배하러 갔다

 

어느 명절이었으니까,

오빠들은 오만원씩, 나는 단단한 은행알을 받았다 어른들이 웃는다 와하하 다 같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속을 여며도 벌어진 틈으로 끊임없이 오물이 흘렀다

 

은행나무 밑에서 오줌 눠본 적 있어?

호미를 들고 기다리는,

자꾸 놀래는 아저씨를 만난 적 있어?

 

찜솥에서 꺼낸 만두가 다 터졌다

너 예쁜 딸은 못 낳겠구나

 

어른들은 나를 천장에 매달아두고 술을 마신다 

고스톱을 치고 연속극을 본다

 

나의 목숨이 달랑달랑

 

굴비처럼 

웃는다

 

하나도 재미없는데

 

전부 다 닭대가리

화투 패로 이마에 벼슬을 달아줘야지

 

기억해 지폐와 지폐가 스치는 소리

 

다 잠들어버리면

지갑에 손 댈 거니까

 

 

 

시작노트

어른들은 나를 잠이 부족해서 짜증이 많은 아이정도로 생각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자주 울곤 했다.

 

 

이예진 | 2023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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