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B ― 좋은 사람

2023. 5. 1. 00:06당신의 주파수

당신의 주파수 20230506

트랙B

― 좋은 사람

 

박상수

 

 

좋은 사람은 수시로 너를 불러 점심을 산다 오늘의 메뉴는 오므라이스와 떡국, 네가 밥값을 내지 못하도록 좋은 사람은 미리 계산을 해둔다 저도 한 번 내고 싶습니다만, 그런 말은 성립할 수 없으니 편하게 먹으라고 한다 숲달팽이가 낙엽 뒤로 사라지듯 손이 움츠러든다 그렇지만 너는 이곳을 사랑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난다 저는 당신과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너 자신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를 때, 좋은 사람은 네가 앞으로 잘 될 분이라고 소개를 대신해준다 빈방이 있다면 문을 닫고 들어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싶다, 는 생각을 하다가 날이 좋아 뒤뜰 정원을 걷기로 한다 제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습니다만, 저도 가끔은 이곳에 앉아서 겨울의 첫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요? 좋은 사람은 자신이 출연한 유튜브를 보여주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너는 시청을 마친 후 말한다 좋습니다,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저녁이 되면 좋은 사람은, 저녁을 먹자고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좋은 사람은 말한다 당신은 매사 긍정적이어서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너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들어오셔도 되는데 늘 노크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숲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매서운 겨울이 찾아온다는 징조, 하지만 열매가 없는 매서운 겨울도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은 유일하게 너를 들여다보는 사람, 수시로 너를 찾아주는 사람, 너는 이곳을 사랑해야 한다.

 

 

 

시작노트
좋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박상수 | 2000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등. 김종삼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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