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 00:00ㆍ당신의 주파수
당신의 주파수 20230910
뼈
천수호
오래 만져온 시간들
그 뼈가 물러 주저앉은 저 물컹한 호수를
처음으로 읽는다
옆구리에 꽂혀있던 장편소설이
한 편의 시로 바뀌는 순간이라고 말하면
호수를 이해하는 사람이 될까
뼈도 없는 이야기를 나눈 긴 시간이
푸른 피를 만들고 있었다니
그는 돌아서서 나를 지목하듯 바라보지만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으로 그를
호수에 밀어넣으며
예민해진 손끝에 쓸리는 뼈를 만진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나의 금기는 언제나 손가락 마디에 걸리는 것이어서
다짐으로 멈춘 눈물이 저토록
고여있을 줄을 몰라서
비명을 짓누르는 한순간의 바람은
저 좁고 넓은 파랑이 된다
가라앉는 시간을 건지며
물결은 멈출 줄도 모르고 뼈를 갈고 살도 채우고
바람까지 휘어 접는다
내가 있던 세계는
호수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할 줄 몰랐고
물에 잠긴 이야기들이
죽음의 뼈를 밀어 올리는 것을 가끔 지켜보았다
옛 입술로 휘파람을 불자
서늘하게 만져온 기억이 또 살갗을 누른다
갈비뼈가 다 드러나도록
시작노트
호수를 오래 바라본다. 유년의 내 성장지에도 큰 호수가 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호수 근처에서 꽤 긴 시간을 살았다. 뼈를 묻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호수에 뼈를 묻었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때 호수를 오래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은 마치 내 삶의 갈비뼈 같다. 내 삶의 염려가 만든 뼈인 것이다. 아플 때마다 콜록거렸고 그럴 때마다 쉽게 드러나는 갈비뼈 같은 파랑은 내 기억에 뼈를 묻었다.
천수호 |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