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은 첫 시집, 『앙팡 테리블』 집필 잡념

2023. 3. 1. 00:008Hz | 취향의 오늘

취향의 오늘 8

안지은 첫 시집, 『앙팡 테리블』 집필 잡념

 

안지은

 

 

나의 첫 시집이 출간됐다. 

 

내가 왜 시를 쓰게 되었나 돌이켜보면 나만의 단어와 문장으로, 나만의 언어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매혹되었던 듯싶다. 물론, 그 매혹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전히 나는 쓰는 자로 끊임없이 내 언어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2016년, 얼떨결에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뒤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를 무너뜨리는 상황과 예고 없이 닥치던 슬픔. 나를 무자비하게 할퀴고 지나간 사랑, 나를 스쳐 지나갔던 많은 당신들과 어떤 순간으로도 남지 못한 시간들. 그 사이를 헤매고 또 헤매면서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면서 2023년 2월에 다다랐다. 그리고 2023년 2월 24일, 그동안의 내 시들이 시집이라는 물성을 입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걷는사람 시인선 83, 『앙팡 테리블』의 생일. 2023년 2월 24일. 어긋남 속에서도 빛나던 슬픔을 시집이라는 접시에 고이 담아 세상에 내보낸 날.

 

‘취향의 오늘’이라는 이름을 짓고, 꾸준하게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지금까지 글을 연재해오면서도 나는 나의 취향이 ‘오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어떻게 지금-여기에 있을 수 있는지 아리송했다. 나의 취향은 명확하게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 없고, 누가 보기엔 난잡할 수도, 어지러울 수도, 엉망진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그렇게 느끼곤 했으니까. 그래도 무수히 많은 나의 취향 중 하나를 붙잡고 글을 쓰다 보면, 그 취향이 나의 오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 첫 시집 <앙팡 테리블>을 눈앞에 둔 지금, 나는 예감한다. 이 시집은 나의 오늘이라고. 쓰기로 점철되었던 지난날이 시집이라는 물성을 입고 지금-여기에, 나의 ‘오늘’에 자리매김한 이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한다. 나는 지나간 나의 과거에서 오늘을 본다. 이미 쓰인 시가 오늘의 나에게 다시 새로이 스미는 경험을 한다. 나는 나의 시를 사랑하고, 이 사랑이 나의 취향이다. 나의 취향으로 가득 찬 이 시집이 나를 벅차오르게 만든다.

 

모든 첫은 첫이라서 의미가 있고, 나의 첫을 마주하는 당신들에게도 첫으로 다가가겠지. 나의 첫을 당신들이 어떻게 읽고 느낄지, 어떤 감각과 정서로 스밀지 나는 영영 모를 일이다. 영영 모를 일을 가늠하면서, 나는 내 첫이 어떻게 당신들에게 첫으로 자리매김하는지 행복한 궁금증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부디, 어느 날 당신이 내 시집을 우연히 마주하고 찬찬히 읽어나가기를. 당신의 눈과 마음에, 감각과 생각 속에 내 문장들이 스밀 수 있기를. 내 숨이 멎어도 나의 시는 오래도록 활자로 남아 가늘지만 오래, 영원을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