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2021. 9. 30. 19:52ㆍ3.01Hz | 산-책

산-책 1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세계사, 1994)

 

김태선

 

 

“책을 버린다.”

허수경의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에 수록된 「거품의 눈물」에는 빛이 좋은 날 책을 골라 버리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책은 곤란한 물건이다. 무겁고 다른 물건에 비해 부피도 꽤 나가는 편이다. 게다가 책 읽기를 마치고 나더라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언젠가 다시 읽을지 모른다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책들은 쉽게 절판되어 다시 구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게 조금 방심하다보면 책에게 사는 곳의 공간을 모두 빼앗기게 되는 일도 생긴다. 그러나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하며 유목민처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허수경에게 책만큼 짐이 되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허수경은 책을 버리다 혼자 생각에 잠긴다. “버릴 수 없는 책이 있을까?” 어떤 책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기도 한다. “가난한 벗의 시집 하나, 이런 시가 들어 있는 시집 하나”라며, 허수경은 진이정의 시 「눈물의 인생」을 자신의 글 안에 옮겨놓았다. 그런데 「거품의 눈물」에서 옮긴 「눈물의 인생」은 「눈물의 일생」을 잘못 표기한 것이다. 어쩌면 “거품의 눈물”과도 같은 인생은 그저 누군가의 한 삶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일생’을 ‘인생’으로 바꿔 쓰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눈물의 일생」이 수록된 시집은 세계사에서 1994년 1월 15에 출간된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이다. 이 책은 2006년 무렵까지 중쇄되었다가 그 이후 절판되었다. 세계사도 2017년 『작가세계』 봄호를 내고 무기한 휴간하게 되었고 문학 분야의 출판물도 그 이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진이정의 시집은 이후 새미에서 요절시인 시전집 시리즈로 2010년 12월에 『나는 계집 호리는 주문을 연마하며 보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첫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와 산문, 대담 등이 함께 실렸다. 그러나 이 책도 지금은 절판된 상태이다. 책은 긴 삶을 이어가지만, 그것이 유통되는 시간은 짧다.

진이정은 자신의 첫 시집이 출간되기 2개월 전인 1993년 11월 19일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준비하던 첫 시집은 그의 유고 시집이 되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의 표제지에 이어지는 첫 페이지에는 ‘유하에게’라는 헌사가 남겨져 있다. 유하는 이 책에 「진이정, 엘 살롱 드 멕시코를 위하여」라는 발문을 썼다. 발문에는 진이정의 시 「시인」의 두 행을 제사로 달았다.

 

병이 나으면
시인도 사라지리라
― 「시인」 중에서

 

삶이라는 병이 나아 사라짐에 이른 이를 생각하며, 유하는 진이정과 처음 만난 날부터의 기억을 발문에 써내려갔다. 그리고 글이 끝나는 자리에 자신의 시를 조사 대신 적어두었다.

 

지워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슬픔은 세월이 흐를수록
잘 익은 살구처럼 더욱 무거워지고
그래 추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살구나무 자리 정령 그 분주한 움직임도 끝내 멈추리라

 

시의 제목은 「살구나무 있던 자리」이다. 유하는 “난 그의 죽음을 애써 지우지 않으리라”라고 하며, 진이정과의 기억과 삶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아트만의 나날들」에서 진이정이 “내 유년시절의 아트만들”이 모두 사라져서 “이젠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며 삶의 무상함을 노래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진이정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라며 “온갖 종류의 아트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며 세상의 허무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인은 기억의 구체성과 실감을 노래하며 이 삶을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져버리지 않았다. 진이정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변하고 사라져가는 삶의 구체적인 것들을 힘겹게 자신의 언어로 건져 올렸던 것이다.

 

(…) 당신이 흐르기에 나는 이름 지을 따름입니다 흐르는 당신 속에서 난 이름 짓는 재주밖엔 없습니다 때문에 난 이름의 노예, 아직도 난 이름의 거죽을 핥고 사는 한 마리 하루살이에 지날지 모릅니다 아아 당신은 흐릅니다 난 대책없이 당신에게로 퐁 뛰어듭니다 당신은 흐름, 난 이름, 당신은 움직임 아주아주 미세한 움직임, 나는 고여 있음 아주아주 미련한 고여 있음, 멀고먼 장강의 흐름 속에서 무수히 반짝이는 <나>의 파도들이여 거품 같은 이름도 흐르고 흐를지면 언젠가 당신에게로 다가갈 좋은 날 있을 것인가요 그런가요 움직임이시여 어머니 움직임이시여 고여 있는 <나>의 슬픈 반짝임,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중에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름 짓는 재주밖엔 없습니다”라고 노래하는 이는 ‘당신’의 이름을 지으려 한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끊임없이 제 모습을 바꾸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어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름을 짓는 일은 떠나가는 것들을 붙잡아두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름 짓기는 사물을 개념적인 것으로 만들어 그 감각적인 존재를 추상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것은 끊임없이 이름을 벗어난다.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의 화자가 “꽃 별 그대 잎 눈 풀씨”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보지만 여러 이름으로 다르게 부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당신’이 그 이름을 끊임없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고여 있는 ‘나’가 흐르는 것을 이름으로 붙잡아두려는 바람은 허망하고도 불가능한 기획처럼 보인다. “난 이름의 거죽을 핥고 사는 한 마리 하루살이에 지날지 모릅니다”는 말처럼 고여 있는 ‘나’의 모습은 미련해보일 수 있다. “거품 같은 이름도 흐르고 흐를지면 언젠가 당신에게로 다가갈 좋은 날 있을 것인가요 움직임이시여”라는 물음처럼 고여 있는 것들도 조금씩 사라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 흐름과 함께하는 찰나의 시간 같은 ‘나’의 반짝임이 있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시인은 “온갖 종류의 아트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지만, 그럼에도 사라진 것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이름의 아트만은 ‘거품의 눈물’처럼 사라지더라도, 구체적인 삶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