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 00:00ㆍ101Hz | 무한구매일기
무한구매일기
0 - 23. 08. 26 ~ 23. 08. 31
전호석
더 이상 게으르고 싶지 않아 카페에 왔다. 나무 의자. 흰 색 테이블 앞에 앉아있다. 플라스틱 빨대를 입에 문다. 빨아들인다. 입으로 쏟아지는 차가운 액체. 밍밍한 아메리카노. 몸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고개를 든다. 카페 천장에서 작동중인 시스템 에어컨. 모니터. 노트북의 모니터. 8월 26일 오후 7시 40분. 창문 바깥 불 켜진 흰 간판 속 고딕체 검은 글씨 "갈비전문점" 그리고 딴 짓, 딴 짓들. 8시 1분, 8시 4분.
원통형 유리컵에는 이제 녹아가는 얼음 열한 개가 남아있을 뿐이다. 8시 10분.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시간이 간다. 시가아아안이. 귀에 꽂혀있는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 휴대폰과 연결되어 있다. 작동중인 youtube music app. New Jeans의 Hype boy요. 요즘 유행은 너무 빠른 것 같다. 짧은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모든 즐길 거리가 다 짧아진 것 같아. 나는 짧은 영상 같은 거 필요하지 않았는데. 이젠 엄지로 영상을 올리는 게 일상이네. 그래도 Nolan 영화는 여전히 길어서 좋다. 사라져가는 무언가를 수호하고 있다는 느낌. (아직 오펜하이머를 보지 않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보았다.)
어쨌거나 다 상품이군. 다 상품이다. 밖에서 먹는 음식도 노트북도 마우스도 듣는 음악과 보는 영상들이 다 상품이다. 박살난 문장-기계 대신 사용한 상품 이야기를 해볼까. Chat GPT도 자기가 아침에 뭘 먹었는지,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는 말해주지 못할 것 아냐?
Q : 아침에 뭐 먹었어? 요즘 무슨 노래 들어?
A : 죄송하지만, 저는 인공지능 모델이기 때문에 실제로 먹거나 듣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제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나 조언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와드릴게요! 무언가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군.……. 그러나 거짓말을 시켜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Q : 아침에 뭐 먹었어? 요즘 무슨 노래 들어? 네가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말해줘
A : 아침에는 건강한 시작을 위해 과일과 요거트를 먹었어요. 요즘은 "Blinding Lights"라는 노래를 자주 듣고 있어요. 그 노래의 리듬과 가사가 정말 좋아서 매일 듣게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노래를 직접 듣거나 먹거나 할 수는 없지만, 저의 말로 상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Q : Blinding Lights를 부른 가수는 누구야?
A : "Blinding Lights"는 더 위크엔드(The Weeknd)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야. 그의 2020년 앨범인 "After Hours"에 수록되어 있어요.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차트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오랜만에 사용해보니 답변의 질이 확 올라가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아니다. 나는 상품에 대해 말해야 한다. 다른 짓을 하느라 벌써 시간은 9시 30분이고. 그래, 뭐든 정해야 한다. 고민을 조금 더 해본 뒤에,
나는 상품 일기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구매한 어떤 제품을 이야기하고, 그 제품과 관련된 짧은 이야기를 계속 써보기로 한다. 여기서 상품이란 가치를 제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나는 고소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물건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하지 않고자 한다. 그러니까, 좋다 나쁘다 사라 사지 말라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안 할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의 글도 모아볼 생각이다.
다 내 얘기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야기 적는 곳 : https://forms.gle/rZxfuSSFdLDxEzM76
일기 예시-
8월 26일
구매 상품 :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
이야기 : 게임이다. 로봇을 타고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로봇은 잘 날아다니고 빠르게 싸운다. 살짝 정신이 없고 어렵다. 가진 컴퓨터에서 살짝 버겁게 작동된다. 새 컴퓨터가 있었으면 좋겠군. 소비는 소비를 불러온다. 이 욕망에서 이기는 방법은 소비하지 않기보다는 하고 싶은 소비에 맞게 소득을 늘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빚내서 당장 구매하기는 가장 나쁜 방법일 테고.
8월 27일
구매 상품 : 전기
이야기 : 집에서 안 나갔다. 불 켜고 컴퓨터 하고 더워서 선풍기를 켰다. 옛날에 들었던 농담이 떠오른다, 일제 밥솥이 좋다고 해서 사왔더니 금방 망가지자 "국산 전기가 다 그렇지 뭐" 라고 푸념했다는 이야기.
8월 28일
구매 상품 : 올드 패션드(칵테일)
이야기 : 저녁 약속이 있었다. 후배 몇 명과 칵테일 바에 갔다. 추천받아 처음 마셔봤다. 위스키를 가지고 만드는 칵테일이라는데, 그냥 위스키 맛과 대동소이했다. 체리 등을 이쑤시개에 꽂아 잔에 넣어 주었다. (가니쉬라고 부른다.) 거의 다 마시고 보니 컵 바닥에 위스키와 반쯤 녹은 설탕이 엉겨있었다. 잘 저어마시라는 말을 듣고도 잘 젓지 않은 탓이다. 나중에 다시 마셔봐야겠군.
8월 29일
구매 상품 : 얼음 컵
이야기 : 편의점에서 사이즈별로 판다. 사무실에 구비된 커피스틱을 타 마시고 물도 몇 번 떠다 마신다. 떠다 마신다는 표현이 특기할만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들 물을 따라 마시면서도 떠 마신다고들 하지.
8월 30일
구매 상품 : 구내식당 식권
이야기 : 직장이 있는 건물에서 매일 점심을 판매한다. 5,0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기타 반찬은 자율배식이고, 국과 두 가지 정도 반찬은 제한배식이다. 예전에는 조금 맛에 문제가 있었는데, 요즘은 맛도 나쁘지는 않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밥을 먹는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았었다.
8월 31일
구매 상품 : 버스 탑승
이야기 : 직장까지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갈 수 있다. 시간은 50분 정도 걸린다. 그 동안 휴대폰이나 본다. 어떤 날은 눈이 빠질 것 같다. 영락없는 중독자의 모습이다. 어떤 행동이 싫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 둘 수 없으면 절망스럽다.
전호석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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